놀랍게도 놀라운 것은 없었다

April 26, 2017

2017 아트스페이스오 기획展

2017_0501 ▶ 2017_051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0502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고경호_김민수_왕선정_이준옥_이지연_정주원_최한결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놀랍게도 놀라운 것은 없었다.』 언뜻 허무주의(nihilism), 혹은 가벼운 언어유희로 들리는 이 말은 정주원의 드로잉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모인 7명의 젊은 작가들은 정주원의 드로잉에 소담히 자리하고 있는 글귀에 눈길이 끌린다. 모종의 동감 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일의 연속인 세상이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작년 말부터 급격한 사회적 움직임을 느낀다. 촛불은 타오르고, 미세한 먼지들은 우리의 시야를 막으며, 수많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폭력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놀라운 요즘이다. 그러나 드로잉은 '놀랍게도 놀라운 것은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감각이 무뎌진 이유일까. 작가 본인은 그것보다 하나의-유일한-단일한 사건이 놀라움을 가져오는 일은 없다는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이 글귀에 대한 다른 6명의 작가 모두의 공감은 놀랍지만 놀라운 것은 아닐 것이다.

고경호_혼자라는 것은 외롭지 않다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7

 

고경호 감정은 항상 양면성을 띄고 있다. 위로 올라가다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고, 터질듯 부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쪼그라든다. 그리고는 한없이 사소해진다. 사소한 전부를 기억한다. 기억하고.. 잊고.. 떠올리는 이 습관처럼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유의미한 과정일 것이다. 내 작업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그 안에는 '이거 아니면 저거'로 가득한 세상의 이분법적 사고, 종교적 교리, 도덕적 잣대 등의 나를 짓누르는 것에 대한 모순과 그것들이 스스로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개인의 감정에서 비롯된 화면은 당신에게로 간다. '허튼 초상'이라 명명한 작업 안의 존재들은 나이고, 당신이고, 누군가 일 것이다. 바라본다. 추억한다.

왕선정_티비가 있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65×100cm_2017

 

왕선정 「에덴 극 - Eden 劇」 나는 얼마 전부터 극화를 그리고 있다. '극화(劇畵)' 이며 '우화' 이다. 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난민(難民)'을 연기한다. 여기서 '난민'은 '어려운 이들' 모두를 포함한다. 즉 소수자를 말한다. 예를 들어 빈곤한 이들과 계급적 차별을 당하는 이들-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종,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을 대신하여 성경 속 인물들이 역할극을 한다. 그들은 하나님, 성모마리아 그리고 어린양 등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역할극'을 보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 모두 그리고 크고 작은 집단은 각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거의 '병'에 가까우며 그 원인은 과거의 나쁜 기억 또는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 각각의 문제는 결국 인간 사회와 역사의 구조적인 '폭력'을 보여준다

이지연_헤엄치는 수키_캔버스에 유채_23×33cm_2017

 

이지연 나의 그림은 길거리를 걸으며 보았던 풍경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에 관한 것이다. 익숙한 거리지만 어느 날 보았던 어떤 풍경이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 않을 때가 있다. 평범한 길거리 한쪽 구석에서 감추고 싶은 불쾌한 냄새가 나고 모르는 척 지나가려 고개를 돌려보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길을 걷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보고, 듣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길거리에 이렇게 많은 전단지 아르바이트가 있는 나라를 나는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내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지하철에서 타인의 스마트폰으로 비치는 이미지나 매시간 나의 핸드폰 알림으로 날아오는 SNS 이미지는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못 베길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쏟아진다. 나는 그 쏟아내고 있는 것들 틈에서 현실과 내면사이의 어떤 공간을 향해 붓질을 시작한다.

김민수_티라노사우루스_캔버스에 아크릴_65.1×80.3cm_2016

 

김민수 내가 그림으로 옮기는 것들은 다양하다. 직접 만든 사물, 티비 화면의 부분,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장면, 지나가다 본 풍경, 수집하는 물건 등. 소재가 다양한 이유는, 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각에 대해 그림으로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이, 그림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놓여 지며 어떠한 형태로 평면화 될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간단한 방법으로도 모든 것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요즘, 오로지 개인의 감각만을 믿고 시간을 들여가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 대해 말하기 원하고, 그림의 의미를 찾아가고 싶다.

이준옥_연두빛 이불과 손_캔버스에 유채_27.1×34.9cm_2017

 

이준옥 내가 그린 그림에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다. 최근에 아버지를 그린 그림을 제외하면, 내가 그린 대상들은 미디어에 의해 재생산된 사람의 풍경에서 왔다. 그 풍경은, 옷에 가린 피부의 무뎌진 감각으로 느끼는, 현실을 망막의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 시리게 한다. 망막에 맺힌, 내가 딛고 있는 사회의 풍경은 물에 의해 종이가 울고, 천에 그린 형태가 번지고, 유화의 거친 표현으로 굴절된다. 이 굴절을 통해 나는 미디어의 동어반복이 아닌 눈빛을 가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한편, 최근 그린 아버지에 대한 그림은, 아버지를 나의 살갗으로부터 벗겨내어 가는 과정을 두터운 물감, 붓질의 움직임과 쌓임으로 완성하였다.

정주원_놀랍게도 놀라운 것은 없었다_종이에 펜_29.7×42cm_2017

 

정주원 나는 스스로를 판단자가 아닌 수집자라고 생각한다. 작업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계속 시도하는 것일 뿐이다. 주로 드로잉 베이스의 작업을 하는데 비교적 작은 화면에 그때그때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한 호흡에 빠르게 그려낸다. 이렇게 모아진 이미지들은 다시 한 번 큰 그림의 소재로써 활용된다. 조금씩 수집해왔던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다시 모아서 재배열하고 재구성해서 어색하고 파편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나는 이미지들의 그 불편한 공존에 관심이 있다. 또한 수많은 이미지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들어가는 그 모순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낀다.

최한결_범람하는 어둠들_익명의 밤 시리즈 중_종이에 목탄_각 42×30cm_2015

 

최한결 '익명의 밤'은 재개발지역에서 1년간 작업실 생활을 하며 그린 밤 풍경 연작이다. 이 시기에 나는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작업을 했다. 늦은 저녁에서 새벽녘까지 주로 '밤'에 대해 사색하며 보냈다. 밤은 낡고 허물어진 콘크리트의 외피들을 어둠의 장막으로 덮는다. 어둠은 오래된 사물의 미천한 몸을 가린다. 밤은 오리지널리티가 없다. 밤은 공간을 한시적으로 점거하고 중성적으로 만든다. 부와 빈도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 강남도 강북도 밤이면 외향적 특징이 사라져 구별할 수 없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손님처럼 지위나 역할이 없어서 수평적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그런 밤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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